에리크 쉬르데주라는 프랑스인이 쓴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LG전자에서 10년간 일하면서 LG전자 프랑스 법인장까지 올라갔던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 다른 사람들이 쓴 서평과 리뷰 몇 개만 봐도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지가 머리속에서 선명하게 떠 오르더군요. 한국기업의 문화는 대부분 비슷하니까요.
저자는 한국 기업에서 보낸 10년간의 시간을 "기상천외한 경험"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해서 그게 문제인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일상들이 프랑스인인 저자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나 봅니다.
개인의 권리와 행복을 중시하는 서구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한국의 기업문화는 개인들의 자아와 행복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군국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로 보여졌을 것입니다.
저자는 LG전자에 대해서만 글을 썼지만(LG전자에서 10년을 보냈으니) 다른 회사를 다녔어도 분명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내 얘기네' 하면서 무릎을 탁 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 기업문화의 특징을 두서없이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1. 수직적이고 일사분란한 조직
한국 기업의 조직은 마치 군대처럼 위계질서가 명확하며 부하는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상사가 시키면 설령 그것이 불합리하거나 이해가 안되는 것이라 할 지라도 무조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효율과 불합리성은 "상사의 지시사항입니다"라는 한 마디 앞에서 모두 묻히게 됩니다.
2. 일만을 생각하는 분위기
회사에서는 일만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퇴근 이후에는 일에 얽메이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한국 기업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일뿐이며 일과 가정의 균형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야근은 일상이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오는 것이 당연시 됩니다.
3. NO라고 말할 수 없는 문화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수직적인 문화이다 보니 윗사람으로부터 무언가 지시를 받았을 때 거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일이 너무 많은데 더 많은 일을 받아서 일을 해야하고, 앞뒤가 안맞는 일도 군말없이 해야 하고, 그러나보면 업무의 질은 떨어지게 마련이죠. 야근 특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4.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문화
업무지시를 받다보면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 하는 일과 중복되는 일이거나, 혹은 그 자체로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 많죠. 하지만 상사에게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나요?" 라고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질문을 했다간 괘씸죄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냥 해야 합니다.
5. 복잡한 의사소통 체계
A팀장과 B팀장이 서로 할 말이 있을 때, 서로 만나서 직접 이야기하면 금방 끝납니다. 그런데 만약 A팀장이 부하를 시켜서 "알아보라"고 지시를 하면 그 부하는 B팀의 직원에게 B팀장의 의중을 알아봐 달라고 연락을 해야 합니다(B팀장에게 직접 전화할수 없으니까).
의사전달의 통로가 길어지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팀간 의사소통 뿐 아니라 팀 내 보고체계시에도 종종 나타납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에게로 가는 길이 참 멀고도 험하죠.
6. 열심히는 하는데, 비효율적인 업무가 너무 많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하기 위한 관리보다는 관리를 위한 관리, 관리를 관리하기 위한 관리, 상사에게 보고를 하기 위한 온갖 서류작업 및 잡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정작 본업은 지연이 되는데, 그러면 그 본업이 지연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보고서를 또 만들어야 하고(자꾸 보고서 쓰라고 하니 지연이 되잖아요!!!라고 쓰고 싶지만 현실은... ㅜㅜ)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연결됩니다.
7. 일은 위에서 시키고, 똥은 아래에서 덮어쓰는 문화
거대한 일에 대한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높으신 분들은, 하고자 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가능한 많은 조사와 정보를 토대로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일은 위에서 벌리고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죠.
업무량에 비해 턱도 없는 예산과 기간을 주고서는 그 기한 내에 못해내면 욕을 무지하게 듣습니다. 많은 경우 애랫사람들이 야근특근으로 메꾸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게 안되는 대재앙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쓰고자 하면 끝도 없이 많은데, 써놓고 보면 그 근본원인은 대체적으로 하나로 수렴됩니다. 강력한 위계질서를 동반한 수직적인 문화죠.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에서는 모든 지시가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갑니다. 그런데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조직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조직을 밑에서 떠받치면서 조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아랫사람"들이죠.
이런 수직적인 조직 속에서 아랫사람들은 일이 안될걸 뻔히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시키는대로 수동적으로만 일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옆부서에서 이미 조사하고 있는 건데 우리가 왜 또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가요?"
"자꾸 한단계 거쳐서 저한테 물어보라 하지 마시고 팀장님이 직접 만나서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의사결정권자끼리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해야 훨씬 일이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될 것 같은데요."
"원인분석 보고서만 계속 쓰느라 정작 일이 안되고, 그렇게 일이 지연되면 또 원인파악 보고서 써야 하는데,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보고서 쓰면 안되겠습니까?"
상사에게 이런 질문이나 요청을 하는 것이 한국 기업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면서 속으로부터 곪아들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죠.
한 세대 정도가 더 지나면 고쳐질까요?
이런 방식으로 우리나라는 그간 고도성장을 해 왔지만 이제는 바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당장은 바뀌기 힘들 것이고,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이 흘러 세대교체가 완전하게 이루어져야 고쳐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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